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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예비군 갔다 옴

김치맛보드카 2022. 10. 24. 20:25

면제나 정공 아니고서야 한남으로 태어났다면 1년에 한 번씩 가야 하는 그곳.

가뜩이나 자국 군인에 대한 멸시와 비웃음이 가득한 한국에서 월요일 출근 시간대에 군복을 입고 버스를 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람도 안 맞춰놓은 채 잠들어버려서인지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는데, 학생 예비군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훈련장 자체가 너그러운 편인지 20분 넘게 지각했지만 들여보내주셨다

요즘은 9시 되면 칼 같이 문 닫아버리는 훈련장도 많다고 들었기에, 그냥 돌아가서 다음 날짜 잡힐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다소 글러먹은 생각까지 해버렸지만 결국 무사히 수료했으니 참 다행이다.

훈련은 뭐... 에이전트 출신인 나로서도 그렇게 빡세지는 않았음.

대부분 실내에서 하거나 산 속에서 이뤄져서인지 먼지 맞을 일도 많이 없었고.

예비군이라 그런 지 그냥 대강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라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모의전용(마일즈 장비) M16A1 소총 들고다니며 교전하다가 실총으로도 쏴 보고, 훈련소에서 K-2 들었을 때와는 또다른 베트남 전쟁스러운 느낌이라 그건 좋았다.

다만 그다지 정밀하지는 않은 건지 벽 뒤에 있었음에도 사망 판정이 나버렸지만(그래도 한 명은 잡은 것 같음.).

실내 사격장에서는 무려 K2C1을 쏴볼 수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훈련용 가스건이었다(시판되는 GBB 에솦건 생각하면 편함. 실제 같은 반동과 격발음).

조교분들도 존댓말 써 가며 최대한 예의 지키려고 하니까 지시에 잘 따르는 게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좋을 것 같다.

다만 위에서 말했듯, 언덕 위에 훈련장이 있다 보니 좀 험한 길도 있어서 평소에 운동과 담 쌓은 히키코모리인 나로서는 금방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은 맨 위 사진처럼 나왔는데(미역국은 안 받았음.) 구성 자체도 괜찮고 나름 먹을만하더라.

아침도 거르고 온 것도 있지만, 평소에도 점심은 꼭 먹는 편이라 푼돈 받는 것보단 이 편이 나으리라.

잊을만하면 논란이 되는 부실 배식 사진을 보면 자기 시간 강제로 바쳐 가며 훈련 받으러 오는 사람들한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포템킨 호 반란만 봐도 힘들게 굴리면서 밥 개 같이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뻔한데 말이다.

듣기로는 동원 훈련 때라는 얘기도 있어서 군필자가 아닌 나로서도 어이가 없었음(현역 부대에도 저런 식으로 주는 곳 분명 없지 않을 거다.).

그 잘난 성평등, 여성 인권에 쓸 예산은 있으면서 매년 원하지 않는 징병으로 인해 자기 신체와 정신, 심하게는 목숨까지 해치는 남성들의 권리와 처우, 인식 개선에는 시큰둥한 국가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

지금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게 당연한 거고 아직 갈 길은 멀다.

여하튼, 잡소리가 길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단 견딜 만했음.

문제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길 또 가야 한다는 거지...

그 때는 지각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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