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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보고 왔음

김치맛보드카 2023. 7. 10. 19:12

필자가 인디아나 존스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 CGV에서 틀어주던 연속방송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전세계를 여행하며 동료들과 고대의 유물을 찾고 나치와 싸우는 내용이 꽤나 인상 깊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든 존스 박사와 경쾌한 주제곡에 사로잡혔고, 이후로도 종종 재방송을 몰아보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편인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이 국내에 개봉했으나 끝끝내 극장에서는 관람하지 못 하고 나중에서야 TV로나마 보게 되었지만 확실히 오리지널 3부작에 비하면 임팩트가 적고 별로였다.

무엇보다 그 멋있었던 존스 박사가 폭삭 늙어버려 노쇠해진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인디아나 존스는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고 그저 한 때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정도로 남았다.

그러던 중 시리즈의 후속편이 나온다는 소식과 더불어 베데스다에서 게임으로 제작한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고, 언차티드 시리즈까지 접해보고 나자 다시금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어떤 내용의 후속작이 나올까 궁금해지는 한편, 다시 보는 '레이더스'는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이제는 각종 매체에서 패러디되는 명장면들을 보며 어렸을 때와는 또다른 시각으로 즐길 수 있었다.

그토록 기대하던 '운명의 다이얼'이 나오고, 예상보다 미묘한 평가에 처음에는 그냥 안 보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

이미 오리지널 3부작으로 완결된 시리즈를 수십 년이 지나 어거지로 되살려낸 것부터가 문제였으니.

다만 그토록 좋아했던 시리즈의 마지막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후회하게 될 것 같아 결국은 극장으로 향했다.

초반부, 포로로 붙잡혔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무장 열차에서 나치 독일군과 싸우며 동료를 구출하는 현역 시절의 존스 박사를 보자 오랜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내가 아는 인디아나 존스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는 전작보다도 나이 든, 이제는 정년 퇴임을 앞둔 노년의 그를 마주해야 했다.

그저 재미없는 노교수, 동네 노인네 취급이나 받는 모습과 혈기 넘치고 여학생들의 인기를 끌며 미녀 히로인을 데리고 다녔던 3부작 당시의 모습이 뇌내 오버랩되어 정말로 서글프게 느껴졌다.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이 그렇게나 적절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대녀 헬레나, 딱히 등장하지 않았어도 진행에 별 문제가 없지 않았나 느껴졌던 테디도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모습이 영 아니꼬워 괜히 본작이 미묘한 평가를 받은 게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탕헤르 시내를 들쑤시며 추격전을 벌이는 존스 박사를 보며 적어도 4편의  '효도 관광'까진 아니구나 싶었다.

물론 기존 작품들과 비교해 워낙 정신이 없는 데다 직접 몸을 쓰며 활약하지는 않기 때문에 많이 부족하단 느낌이다.

그래도 배우인 포드 옹의 연세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렇게라도 등장하는 게 그나마 최선이 아니었을까.

최후반부에 가서기는 하지만 서로 동료 의식을 결속시키고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려 하는 부분은 꽤 인상 깊었다.

(독일군 폭격기를 그리스군이 보낸 용으로 생각하고 발리스타를 쏘아 그걸 또 맞히는 로마군의 사격술도 어떤 의미로는.)

그동안 신의 전령이나 심장을 꺼내는 흑마술, 수백년을 살아온 기사는 보았어도 완전히 고대 시간대로 가는 것은 본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이혼한 마리온과 재회하며 레이더스의 오마주 장면이 나오는 것도(다만 이번에는 서로 대사가 뒤바뀌어서.) 결국은 다시 원점인 1편으로 돌아온 것 같아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 나름 적절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에서 활약했던 머트가 베트남전에서 전사했다는 설정으로 미등장한 것은 아쉽지만 배우인 샤이아 라보프 씨가 할리우드와 멀어진 것도 있고 사생활 관련해서 논란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을 듯.

다만 그 때문에 작중 반전 시위에서 추격자들을 따돌리고자 시위자들을 따라 즉흥적으로 전쟁 반대를 외쳤던 존스 박사로서는 전쟁으로 잃은 아들이 생각 나 진심으로 외친 것도 있지 않았을까.

1, 3편에 이어 존스 박사의 조력자이자 친구 살라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JFK 국제 공항에서 탕헤르로 떠나는 존스 박사를 응원해주거나 마지막에 손자들을 이끌고 1편에서의 그 노래(A British Tar라는 오페라 극중곡이다.)를 부르며 집을 나서는 게 나이들기는 했어도 변함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 지도를 따라 비행기나 배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도 당연히 나오며, 전작들의 레시프로 여객기가 아닌 제트엔진 여객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작중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레 느깔 수 있었다. 

 

작중 악역인 위르겐 폴러나 존스 박사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대사로도 나왔듯, 본작 또한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이미 늙어버린 작품이다.

영상 자체야 최신 장비를 사용했지만 본질 자체는 80년대의 그 어드벤처 액션 영화에서 그다지 바뀌지 않았으니.

잘 보면 CG 티가 나기도 하고 개봉 시기마저 흥행하기에 좋지 않다.

무엇보다 시공의 균열이라던가, 안티키테라가 그것의 주기를 계산하는 장치였다던가 하는 허무맹랑한 설정과 전개도 요즘 보기에는 무슨 이런 영화가 있나 싶을 것이다(물론 1편부터 이런 오컬트, 음모론스러운 소재를 적극 사용했기에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나 다름 없으므로 작품 내적으로 놓고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다.).

필자만 하더라도 팬이 아니었다면 그냥 슥 보고 넘겼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따라서 단순히 호기심에 본작을 볼 생각이라면, 그냥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1'이나 보라고 하고 싶다.

새로운 신규 관객들보다는 팬들을 위한 영화에 가까우며 작중에서도 그러한 오마주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자신이 인디아나 존스의 팬이거나 적어도 TV 영화 채널에서라도 그의 젊을 적 활약을 함께하며 재미있게 본 존스 박사의 '옛 친구' 라면 기꺼이 그의 마지막 귀환 겸 은퇴식에 참석해도 좋지 않을까.

비록 스크린에서 그를 볼 수 있는 것은 이번으로서 끝이지만, 모니터 속 그래픽 폴리곤으로나마 젊은 시절의 존스 박사를 재회할 그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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